The Best Cure for Those Returnees is a Beating

Chapter 27




이하연은 무엇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들킨 거지? 들켰다면 언제부터?

그런 의문이 순간 뇌리를 스쳤지만, 이하연은 그 이상 사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고를 멈춘 순간, 그녀의 육체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반응했다.

-퍼억!!

기습적으로 내지른 발차기가 천녀의 복부에 꽂혔다. 천녀의 몸이 튕겨져 나가고, 이하연 또한 반동으로 주르륵 밀려난다. 이하연은 그 반동을 시동 삼아 곧장 지면을 박차 도주했다.

-타앗!!

이하연은 노련한 집행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집행관은 집행관.

전투 상황에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한 순간, 그녀의 판단은 번개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딱히 그녀가 뛰어난 건 아니다. 집행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양이었다.

‘알현실에 함께 온 기사단원은 넷. 전력은 몰라. 그렇지만 제압이 아니라 돌파라면 충분히 해볼 만해……!’

순식간에 입구 부근까지 뛰어간 이하연.

뒤늦게 기사단원들이 그녀를 막아서려던 순간, 이하연의 귓가에 달콤한 음성이 흘러들어온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우뚝.

그 말과 동시에 이하연의 발이 우뚝 멈췄다.

“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저하게 반응이 둔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착각할 정도로.

“어머, 생각보다 성수를 덜 마셨나 보네요?”

이하연의 고개가 돌아간다. 천녀는 그녀를 향해 한손을 뻗은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수, 정확히 말해 천녀의 체액에는 두 가지 능력이 있다.

하나는 마신 자에게 선사하는 지고의 쾌락과 환각. 진리교의 교세 확장에 필수불가결인 능력이었지만, 천녀의 체액이 가지는 진면목은 따로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저항하지 않는다면 금방 편안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 진면목은 바로 천녀의 체액을 마신 자를 천녀의 의도대로 조종하는 것.

일반인이라면 체액을 희석한 성수를 입에 댄 것만으로 끝. 귀환자라도 양이 누적됨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었다. 체액의 첫 번째 효과와 겹쳐 대상의 체내에 천녀의 체액을 축적시키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이하연의 경우 그녀가 가진 힘에 비해 성수를 덜 마셔 완벽한 조종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움직임을 제한하는 정도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했다.

“잡아요.”

천녀의 명령에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하연은 납처럼 무거운 몸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다.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사실.

“뭣?”

이하연, 그녀는 집행관이었다.

-퍼버벅!!

“커헉?!”

가장 먼저 달려들던 박유성의 복부에 이하연의 주먹질이 파바바박 박혔다.

천녀가 그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의 연격. 그로 인해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이하연이 포위망을 빠져나가 적들과 대치했다.

“……하연아, 쓸데없는 저항하지 마. 넌 우리를 못 당해네.”

손에서 신성력으로 검을 만들어낸 혜솔이 이하연에게 말했다.

그녀로서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감히 천녀에게 발길질을 날린 이하연에게 분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처럼 들어온 동갑내기 단원을 이 이상 헤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콱! 콱!

그러나 이하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한 채 바닥을 연신 발로 찍어대고 있는 그녀를 보며, 혜솔은 한숨과 함께 검을 치켜들었다.

“친구,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타앙!!

혜솔의 돌진과 동시에 다시금 단원들이 달려들었다.

단원들은 저마다의 이능을 앞세워 이하연을 몰아붙였다. 성전 기사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움직임은 일반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그야 그들은 전원 귀환자 출신.

모든 귀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귀환자의 귀환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강함을 나타내는 척도였으니까.

살아서 귀환이 가능했다는 것은 즉, 온갖 위험이 득실대는 이세계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이제 그만 항복하지 그래!”

게다가 이들은 기사단에 들어온 이후, 교단을 지키는 방패이자 천녀의 검으로써 연일 훈련에 매진했다. 휘두르는 검과 주먹은 이세계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날카로워져, 누가 보더라도 일류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퍼억!!

“큽?!”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이야기.

평범한 귀환자가 평범하게 단련해서 도달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의 강함.

-퍼억!!

“어억?!”

고작 그 정도로는 집행관의 강함에 닿지 못한다.

집행관은 수많은 귀환자들 중에서도 거르고 걸러진 존재.

훈련 조금 한 것으로 강해졌다 자만하는 아마추어를 무력으로 찍어눌러 제압하는, 문자 그대로 프로의 영역에 발을 걸친 자들이었으니까.

-퍼억!!

“쳇…!”

물론 이하연은 집행관이어도 어디까지나 견습에 불과했다. 하물며 천녀에 의해 움직임까지 제한당해, 아무리 그녀라도 단원 넷을 상대로 압도할 수는 없었다.

썩 잘 싸우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하연을 생포하기 위해 단원들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기 때문. 전투가 길어지면 쓰러지는 건 결국 이하연 자신이 되겠지.

그렇기에 이하연은 처음부터 승리를 노리지 않고 하나의 빈틈만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들의 공격을 받아넘기며, 숨죽이고 있던 이하연의 두 눈이 마침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

-콰앙!!

이하연은 지면을 참과 동시에 오른쪽 다리에 저장해두었던 ‘힘’을 해방했다.

그녀의 초능력은 힘의 저장과 방출. 조금 전 일부러 지면을 콱콱 밟아대며 저장해둔 힘을 해방하자, 이하연의 근력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그녀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뭣, 이제 와서 도망을-”

뒤늦게 반응해도 늦었다. 단원들의 속도는 뻔히 꿰고 있었다. 이대로 무사히 알현실을 나설 수만 있다면, 저들은 결코 자신을 잡지 못한다.

‘좋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안 돼요.”

그러나.

-촤르르륵!!

출구에 다다른 순간, 이하연의 발목을 향해 빛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

출구로 향하던 이하연이 급하게 방향을 틀어 사슬을 피했다.

-촤르르륵!!

그러나 사방에서 날아든 몇 갈래의 사슬이 이하연의 퇴로를 빠르게 봉쇄했다. 순식간에 이하연의 팔과 다리에 사슬이 엮여, 이하연을 강제로 지면에 내리꽂았다.

-쿠웅!

“카흑!?”

둔탁한 고통을 참으며 뒤를 바라보는 이하연.

그녀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빛의 사슬은 천녀의 등 뒤 허공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이하연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녀는 싱긋 미소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뭐야, 저게…….’

저만큼 먼 거리에서,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날아와 그녀를 구속한 빛의 사슬.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천녀는 언제든 이하연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과 싸움을 붙인 건 그녀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단순히 그녀를 가지고 논 것일까?

-뚜벅. 뚜벅. 뚜벅.

고뇌하는 이하연을 향해 천녀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수를 써도 사슬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안 이하연은, 정보라도 얻어볼 심산으로 천녀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알았죠? 설마 처음부터?”

“아뇨, 얼마 안 됐어요. 조언하자면, 어딘가에 잠입했을 때는 같이 잠입한 동료를 잘 살피는 게 좋을 거예요. 언제 배신할지 모르니까.”

그 말에 이하연은 직감한다.

최진서,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밀고했구나.

순간 배신감이 든 이하연이었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의 불찰이라며 납득했다.

귀환자인 그녀마저 성녀에 거의 중독될 뻔했다. 하물며 일반인인 최진서는 더 빠르게 영향을 받았을 터.

자신이 성수에 중독되지 않는 데에 급급하여, 최진서에게 미칠 성수의 영향을 간과했다. 그것이 불찰이고 패착이었다.

“뭐, 그 자매님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제 쪽에서 먼저 찾아갈 생각이긴 했어요. 집행관의 무력이 무척 탐이 났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발로 찾아와주시니 너무 좋은 거 있죠? 분명 이 또한 아버지 디온 님의 은혜겠죠.”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나요? 허가받지 않은 이능을 이용한 폭행, 납치, 감금, 세뇌……. 다 사악한 범죄라고요.”

“아뇨, 사악하지도 범죄도 아니에요. 자매님이 말씀하시는 건 신을 모르는 인간들이 만든 잣대에 불과하죠. 언젠가 디온 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날이면, 그런 법과 기준 따위 다 부질 없어질 거예요.”

진심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며 황홀한 미소를 짓는 천녀.

이하연은 그런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그녀에게 이죽거렸다.

“…………도대체 그 디온이란 신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무사히 현실로 귀환했는데도 못 잊고 사는 건가요?”

“아주 강하고, 또 위대하신 분이시죠. 감히 저항하려는 생각조차 품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지만, 제 주제를 알고 엎드려 굴복하면 한없이 자비롭고 온화하신 분이에요. 보세요! 고작 열 살일 때 이세계로 전이됐는데 멀쩡히 살아돌아왔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강력한 힘까지 내려주셨고요.”

-키이이이이잉!!

천녀가 오른손을 들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황금색 찬란한 신성력이 휘몰아쳤다. 그 아름다운 광채에 주위에 있던 단원들이 저마다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자아, 자매님. 우리 온건하게 타협하도록 해요. 저와 디온 님을 위해 일해주세요. 대신 저는 자매님이 이 세상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쾌락과 안정, 그리고 구원을 드릴게요.”

-서걱.

천녀가 자신의 손목을 나이프로 그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이하연에게 들이밀었다. 붉은 혈액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에 이하연은 당장에라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싫어요.”

그러나 이하연은 꺾이지 않는다. 몇 번이나 그냥 꺾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나약한 이성을 채찍질하며 천녀에게 고한다.

“저, 집행관이거든요. 자기 신도한테 범죄나 저지르게 하는 신 따위, 절대 믿고 싶지 않아.”

“믿고 싶어질 거예요.”

-콰악!!

천녀가 이하연의 뺨을 한손으로 붙잡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억지로 입술에 비볐다. 이하연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입술 틈새로 흘러들어간 진한 혈액은 이하연의 이성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허억…! 앗, 크, 으흐그으으윽…!”

“자, 어떤가요? 빛이 보이지 않나요? 황홀한 쾌감이, 충만한 만족감이 느껴지시죠? 저항하지 마세요. 신의 힘 앞에 엎드려 굴복하세요. 그럼 편해질 거예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걱정과 근심은 다 저에게 맡기세요.”

-꿀꺽. 꿀꺽. 꿀꺽.

한 모금의 피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이하연은 뇌가 튀겨지는 듯한 극상의 쾌감을 느꼈다.

그녀의 시야에는 성수 특유의 환각이 펼쳐져 있었으나, 혼미한 정신은 그 환각마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따듯한 물속에 전신을 담근 것처럼, 부드러운 부유감과 압력이 그녀의 몸을 기분 좋게 어루만진다.

-툭.

마침내 천녀가 손을 떼자, 이하연은 황홀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헷, 헤…….”

“자,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당신의 힘을, 저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맹세하시나요?”

이미 굴복시킨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천녀는 계속해서 이하연에게 물었다. 마치 거기에 중요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맹, 맹세…….”

이하연이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천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아, 귀여워라.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천녀는 늘 이 순간만 되면 등줄기가 오싹오싹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강한 힘과 정신을 지닌 자가 자신의 발치에 엎드려 굴복한다. 신의 위대함을 깨닫고 그 대리자인 자신에게 영원한 굴종을 맹세한다.

그 사실을 곱씹고 있노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도 절정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지고의 정신적 쾌락을 목전에 둔 채, 천녀는 이하연의 입에서 나올 굴복의 선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맹, 세에…….”

그러나 그 순간.

쾌락과 환각에 절여져 있던 이하연의 눈빛에, 일말의 이성이 돌아온다.

“……하기, 싫어. 절대로 안 할 거야.”

그 한마디가 구름 위를 거닐던 천녀의 정신을 단숨에 지상으로 내리꽂았다.

“…….”

천녀가 살벌한 눈빛으로 이하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하연은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 방금 그 거절의 말을 꺼낸 참이었다.

-툭.

이하연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무릎을 꿇은 채로 쓰러진 거라 꼭 천녀의 발밑에 엎드려 조아리는 듯한 모양새.

“……참, 집행관이 뭐라고. 귀찮네요.”

허나 천녀가 기대했던 광경은 이런 게 아니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분노가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천녀가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지하에 가둬두세요. 아무래도 이 자매님은 천천히 공을 들여서 굴복시킬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그렇게 말한 천녀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진다.

그래, 쉽게 굴복하면 또 재미가 없지. 고고하게 버티는 이성을 끊어내 잘근잘근 씹어 짓이기는 것 또한 쾌락이고 유열이 아니겠는가.

단원들이 부축해 일으켜 세운 이하연에게 다가가, 천녀는 그 귓가에 속삭인다.

“기대되네요. 자매님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

[ 잘 끝났습니다. ]

화면에 표시된 문자를 보며 최진서는 스마트폰을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꽈악 들어갔다.

잘 끝났다.

뭐가 잘 끝났다는 건지. 최진서는 순간 허탈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 씹었다.

저들 입장에서나 잘 끝난 거지, 최진서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저지른 배신이 최악의 형태로 결말을 맺었다는 뜻이지 않은가.

[ 언니는 무사한가요? ]

[ 무사합니다. 이하연 자매님은 저희가 온건하게 잘 설득하겠습니다. 진서 자매님께 그랬던 것처럼요. ]

죄책감을 떨쳐내고자 보낸 문자에 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최진서는 차마 그 문자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닫았다.

최진서에게 했던 것처럼 온건하게 잘 설득하겠다.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최진서의 배신은 결코 성수에 의한 세뇌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수는 최진서에게 쾌락을 준 한편, 환각을 통해 그녀의 정신에 강제로 신앙심을 쑤셔박았다. 그리고 그 신앙심은 교단에 잠입하고 있던 최진서의 불안을 더욱 강화했다.

진리교는 평범한 사이비종교가 아니다. 이세계에 정말로 실존하는 신을 믿는, 진짜 종교다.

그런 종교를 상대로 적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설령 옳다고 해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강대한 신인데, 한낱 인간인 경찰이나 집행관이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지?

불안은 점차 덩치를 키워갔고 이는 곧바로 겉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최진서의 부모는 딸의 낌새가 이상함을 곧바로 감지했다.

비록 교단에 깊게 심취했다곤 하나, 그들은 여전히 최진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혹시 힘든 일은 없냐고. 우리가 도와주겠노라고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말은 100% 진심어린 사랑과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말에 극한까지 몰렸던 최진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최진서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것은 이하연에 대한 배신이었지만, 동시에 부모님 앞에서 줄곧 쓰고 있던 거짓된 가면을 벗는 행위이기도 했다.

최진서는 죄책감과 동시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이 끝났을 때, 그녀의 부모는 최진서를 말없이 꼬옥 안아주었다. 그 품 속에서 최진서는 생각했다.

어차피 교단에게 이길 수 없다면. 신에게 저항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 그늘 아래로 들어가 엎드리는 편이 훨씬 편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끼익.

“……저 왔어요.”

“응, 어서 와 우리 딸! 오늘도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했어!”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따스한 목소리로 맞이해주었다. 집안 가득 풍기는 매콤한 향에 최진서가 부엌을 바라보자, 그녀의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우리 딸이 좋아하는 카레로 했지. 아빠도 곧 퇴근하신다니까 이따 다같이 먹자?”

“응, 고마워 엄마.”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최진서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따스한 풍경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하연을 배신했다는 자각은 있다.

당연히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배신한 지금도 솔직히, 진리교가 올바른 종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걸로 됐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죄에 전전긍긍하며 불안에 떠는 것보다야,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이걸로 된 거야. 이걸로…….’

물론 그 행복한 시간은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지만.

‘이걸로…….’

어차피 조만간 자신 역시, 두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 거짓마저 진실로 여기게 될 테니까.

‘된, 걸까…?’

최진서의 뺨을 따라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이 안도와 행복감에서 오는 기쁨의 눈물인지, 혹은 자신을 위해 나서준 이를 배신한 후회와 죄책감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엉망진창이 된 최진서의 머리로는,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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